극 내성적인 성격인 내가 뜬금없이 바이크를 타고
영월로 달려간 이유는 단순하다.
책방 구경이 하고 싶어서..
지독히 더운 여름을 버티고 얻어낸 휴가 첫날
가려고 했지만. 태풍 카눈인지 카누인지..
그녀석 때문에 못갔다.
비는 어떻게 해보겠는데 바람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덕분에 예약한 캠핑사이트
비용도 날리고..심술만 가득한 이튿날 아침이다.
새벽 강습을 일부러 빼고 간 수영장에서
하는둥 마는둥 물속을 헤짚고 있다가
한 가지 사실을 알아챘네…
태풍이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어 비가 그쳤다.
서울은 비가 올지 모르지만, 영월은 모른다.
어차피 이동시간이 세 네 시간 걸릴테니, 가는중에 태풍도 북으로 북쪽으로 올라가 버릴테다.
캠핑가방 대신, 백팩에 물병 두 개, 김밥 두 줄 챙겨넣고 북으로 북쪽으로 바이크를 몰았다.
세종시 위로는 가본적도 없는 바린이가 무슨 깡다구가 생겼는지 네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대로 기세좋게 달려본다.
*125cc 펠스버그 125는 최고 속도가 80이다. 그것도 내리막 길에서, 모터의 rpm이 최고 일때가 그렇다.
덕분에 뒤로 차가 따라 붙으면 비상등을 켜고, 앞질러 가라는 손짓을 해야 했다.
네 시간이 조금 넘게 걸려 도착한 산속의 서점은
기대 이상으로 정갈했다.
태풍이 지나갔으니 나뭇잎도 날렸을테고 산 속에 있으니 거미줄이야 악세서리로 있을줄 알았다.
서점 지키미의 성격이 정갈한가 보다
비온뒤에 종이 냄새가 더 짙어진다고 그랬나?
음악과 은은한 종이향? 가득한 공간에
책꽂이에 다소곳이 꽂힌 책들의 제목이 익숙하다.
서점 주인의 취향이려니…
단층 건물 한 채로 이루어진 책방에 주인장은
그 많은 책들중에 어떤책으로 채웠을까?
궁금했다.
친절하게도 먼저 인사해주시고, 말걸어 주시는 서점원, 사장님. ㅎㅎㅎㅎ
책을 구매하면 원래 보이차를 주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네 시간동안 물 한모금 제대로 못먹고 달려왔는데 말이다.
얼음 동동 띄운 보이차는 더할나위 없이 시원하고 좋았다. 감사하다.
목적한 책은 없었으나 서점원이 썼다 하는 수필집이 있어 골라봤다. 궁금증이 풀릴수도 있겠다.
성수대교 사고로 동생을 잃었다는 요조씨의 책도 잡히고,
슬픔을 좀 아는 사람인가…책 제목에서 동질감이 느껴져 덜컥 몇 줄 읽었다. 사야지..
재기발랄한 여러 젊은 작가들의 책들이 와글와글 무엇인가 말하려고 했지만…내 가방은 이미 가득채웠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서야 했다.
내려오는 길이 가파라 아득하다.
멀리서 SUV 한 대가 올라오길레 비켜섰다.
차는 좋다. 이런 언덕도 씩씩하게 올라올수 있으니..
내 바이크는 어림없다.
차가 멈춰선다. 창문이 내려지고, 노부부가 보인다.
어디 다녀가시냐고???
예상했던 질문은 책방이 여기 맞나요?였다.
두 분은 책방보다 더 높은 언덕에 사신단다.
책방에 다녀간다 하니 ..저 아래 오토바이 세워둔 분이냐고 하시는데..나도 ‘네‘하고는 별말이 없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길에 문득 부러웠다.
좋은 책방에 가까이 사는 사람들.
사람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애정이 느껴졌다.
나도 나중에 시골에 살게된다면, 영월에 살고싶어 졌다.
대전 오는 길이 바빠서 서둘러 책방을 떠났지만…
책이 궁금했다.
올때 봐두었던 근처 이쁜 버스정류장에 들러
김밥과 함께 후루룩 몇 장 읽었다.
맛있었다. 김밥 맛인지 글 맛인지지 모르겠지만,
맛있게 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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